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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이전] 음악꾼, [현재] 배우. 1981년 4월 5일 생. 용산공고와 <경기>대를 졸업했다네요. 동방신기의 최강창민과는 다른 인물이며 모바일 게임 사커스피리츠의 동명이인 캐릭터와도 무관해요. 최창민은 공백기때 최제우로 이름을 바꿨지요.

그는 81년생 올해 39세로 180cm이 랍니다. 용산공고를 졸업 후 <경기>대를 나왔지요



1996년 터보의 빽업댄서로 각광을 받은 이후 1997년부터 10대{-}20대 <여성>들을 타깃으로 했던 쎄씨나 에꼴 같은 패션잡지 모델로 등장하면서 아주 귀여운 외모와 상큼한 미소로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는데요. 말 그대로 90년대의 청춘 스타. 지금은 어엿한 중견 의류기업으로 성장한 지엔코 의 첫 의류브랜드 스포츠리플레이견 초창기 모델이었는데요. 아직까지 해당 의류 브랜드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최창민을 떠올릴 정도. 이후 거래성이 해당 의류브랜드 모델이 되기도 했었는데요.



원래는 모델 출신이던 그가 춤을 췄으니 여러 음반사에서 음악꾼 제안이 들어왔고 최창민과 손을 잡게된 조선음향 




측은 최창민의 음반 활동을 책임지게 되는데요.



1998년 송혜교, 조여정, 김승현과 함께 [SBS]의 시트콤인 '나 어때'에 나오면서 추측들에게 얼굴을 알리며 본격적으로 유명해졌지요. 같은 해 [SBS] 연기대상에서 시트콤 부문 신인상을 수상하기도 했고, 인기가요 11위~20위 순위를 송혜교와 함께 소개하기도 했다네요!  이 해 10월 '영웅'이라는 곡으로 음악꾼으로 데뷔했는데 데뷔 앨범에 수록된 {영웅}이 1위 후보까지 오르며 상당한 인기를 얻었고 이후 후속곡 {짱}도 10대들 사이에서 유행하며 성공적인 음악꾼 데뷔를 했다네요.


그 전까지 최고라는 뜻을 담은 유행어 "캡"이 있었지만 최창민을 필두로 "짱"이라는 단어가 더 앞서질러 유행을 타기 출발했고 지금도 "짱"이라는 단어는 사람들의 실생활 속에서 자주 쓰이고 있답니다.



1집 {영웅}의 뮤직비디오 도중 교복안에 후드티를 받쳐입는 패션이 혁명을 일으켜 2019년 현재까지도 그 영향력이 이어지고 있답니다. 유독 추위를 많이 타던 최창민이 코디네이터에게 부탁해서 별 추측없이 후드티를 안에 입었는데 이것이 반향을 일으킨 것이네요.


당시 송혜교와는 학생복 스마트의 모델로 함께 출기한 바 있답니다.


한참 인기가 많았던 시절 잡지에서 무의방식적으로 좋아하는게 뭐냐는 질문에 홈런볼 과자를 좋아한다고 말했는데 어느 날 집에 와보니 난생 보지도 못했던 모든 맛의 홈런볼 과자가 집안 <가득>히 쌓여있어 질릴 정도로 먹었다고 말한 적이 있답니다.




1집 활동 종료 후에는 당시 인기 스타 박지윤과 함께 뮤지컬 미녀와 야수에 캐스팅 되어 공기한 적도 있답니다. 박지윤과는 모델 출신이라는 점도 비슷하고 [나이]대와 인지도도 비슷하여 모 캐이블 음악 Program에서 함께 진행을 맡은 바 있었다고 합니다.


이후 발매된 2집 앨범 {그녀의 뒤엔 항상 내가 있었다} 와 {눈을 감아}도 10위권 안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으며 이듬해 발매된 3집에서 {Tell Me Why}라는 곡으로 짧게 활동하고 음악꾼 활동을 마무리지었는데요. 앨범 발매 직후  내부 문저가 터져 활동을 접어야 했고 이 시점부터 연예계 활동이 사실상 정지되었는데요.



초기에는 가창력 문제로 혹시평을 들었으나, 이후 점차적으로 가창력이 진전되어 3집까지 발매했지만 3집 발매 직후 소속사의 앨범 투하금 횡령으로 인해, 공사장을 오가며 육체노동을 해야 하는 정경이었다는 사실이 tvN 예능Program '명단공개 2015', 비디오스타{180911}에서 밝혀졌지요. 참조


최창민이 1997년 쯤 잡지 모델로 인지도가 올라갈 무렵 여러 연예기획자들은 그에게 러브콜을 보내왔는데 어린시절이라 그 제안이 무서워서 명함을 받아도 버리곤 했다네요고 해요. 그러던 어느날 다수의 연예기획자들이 고가의 밴을 타고 요번것과 달리 한 매니저가 그를 찾아와 조촐하게 버스를 타고 내려서, 햄버거 단품을 사주며 매니지먼트 제안을 했고 그에게 마음이 이끌린 최창민은 이 사람과 일을 출발하게 되는데요. 어린 시절 많이 <가난>했던 최창민이 이 매니저라면 비슷한 아픔을 겪었기 하여서 더 잘 통할 거라고 믿어서 매니지먼트 <권리>를 이 사람에게 맡기게 된 것이라고 알려져있어요.



이후 최창민은 음반 기획사의 러브콜을 받고 상당한 금액의 계약금을 받았는데 최창민은 계약금의 절반을 매니저에게 떼어주며 실장자리에 앉히고 소속사 건물도 구하게 하고, 최창민의 인감 문서들도 송두리째 맡겼는데, 문제는 여기서 터진 것이네요.




최창민이 3년 간 음반 활동을 하고 있는 동안 최창민에 대한 <권리>를 조폭계 기획사에 팔아넘기고 방대한 수익금, 차기 앨범 투하금을 송두리째 훔쳐가는 것도 모자라 수많은 빚을 최창민의 이름으로 져놓은 다음 달아나 버렸지요... <결국> 엄청난 빚이 그의 앞으로 올라오게 되면서 설상가상 연예계 활동도 막혀버리게 되는데요.



이후 최창민은 영문도 모른 채 조폭관련 기획사에 몰수됐으며 최창민을 관리하게 된 조폭사장은 성인이 된 그에게 밤업소 무대를 설 것을 압박했지만 끝까지 최창민은 못하겠다고 했고 험악한 정경까지 갈 뻔했다네요고 해요.


공백기에 지하철 택배 일을 하며 비용을 마련해 주역을 배운 덕에, 역술가로도 활동하고 있답니다고 하며 라디오 스타를 비롯, 예능 Program 다수에서 출연자들의 사주와 운세를 풀이해 주었는데요. 여담으로 해당 시기, 자신에게 방송 출연의 기회가 다시 찾아올 것임을 사주 풀이를 통해서 이미 알고 있었다고 해요.



2019년 [JTBC]에 방송하는 {오늘의 운세}에 명리학 전문가로 출기해요. 여전히 잘생긴 외모를 킵하고 있답니다.

같은 해 10월, 명리학 칼럼을 연재하기 출발했다네요. 첫 칼럼 심지어 어서 말을 해에서는 출연자들의 연애운을 봐줬는데 절친 김승현의 연애 사실이 공개되기도 전에 그에게 연애운이 들어와 있답니다는 것을 예측했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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