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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엄마 김혜자는 고령의 나이에도 특유의 사랑스러움과 애잔하면서도 폭발적인 연기력으로 전 세대에 걸친 사랑과 존경을 받는 배우.

1941년 경성부 출신이며 1960년 이화여자대학교에 입학했으나 1961년 결혼하면서 학교를 중퇴하였습니다. 전원일기 덕택에 '한국의 어머니' 상으로 불리고 있으며 거기에 1969년 개구리 남편 참석 이후로는 수십년 동안 최불암과 부부로 참석한 작품이 많기 때문에 예능 프로그램에선 최불암과 부부기믹으로 엮인다. 나긋나긋한 목소리와 느릿한 말투가 특징인 배우인데요



그 덕택에 최불암 시리즈에선 최불암과 엮이는 일이 많습니다. 한창 최불암 시리즈가 유행할 시절에 진짜 김혜자와 최불암이 부부인 줄 알았습니다는 국딩들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 사실 당대의 국딩들만 오해한것은 아니고 아줌마나 할머니분들도 많이 한 오해이기도 합니다. 부부로 같이 참석한 것이 30년은 족히 되니까 실제 최불암의 부인은 탤런트 김민자다. 웃기게도 전부 자로 끝나서 그런지 김민자도 김혜자와 친자매라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정작 둘은 남남인데도 말입니다.




김혜자가 지금까지 참석한 광고는 대부분 CJ제일제당 계열사 관련 광고랍니다. 한창 제일제당 광고에 나올 당시 제일제당은 김혜자를 단순한 광고 모델이 아닌 전무급으로 대우했으며 김혜자도 20년 넘게 의리를 지켰습니다.

1961년 KBS에선 뽑은 한국 첫 공채 탤런트 26명 중 1명으로 데뷔했습니다. 하지만 데뷔 직후 졸업 연수 작품을 찍은 직후 스스로의 연기력에 실망 후 배우를 그만두었습니다. 이와 관련해 김혜자는 “배우가 되고자 하는 열망만 컸지 연기에 소질이 없습니다고 생각해 도망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한 가정의 어머니로 살던 도중 27세의 나이에 다시 연기에 대한 갈망을 느꼈고, 3년 간 연극 무대서 ‘연극계 신데렐라’로 살아왔습니다. 이후 탄탄한 연기력을 바탕으로 1969년 MBC가 개국하면서 스카웃되어 본격적인 TV 연기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그래서 20대에는 TV 참석작이 많지 않네요


 이후 MBC 드라마 개구리 남편, 강변살자, 학부인, 무지개, 신부일기, 여고동창생, 후회합니다, 당신 등의 다수의 작품에 참석하며 MBC의 간판 스타이자 연기파 배우로 이름을 알렸고 다수의 최우수 연기자상을 수상하면서 톱배우의 반열에 올라네요.


출생

1941915[77]

일본령조선 경기도 경성부

,몸무게,혈액형

A

출신학교

경기여자고등학교

이화여자대학교 생활미술학과중퇴

직업

배우- 방송인

본가 가족관계

슬하11

취미

골프- 조깅

종교사항

개신교[장로회]

첫작품

1961KBS 1기공채 탤런트


1974년 MBC 제1회 탤런트 연기상에선 김혜자는 최불암과 나란히 최우수 연기상을 수상하였으며 1975년 참석한 신부일기로 제3회 대한민국 방영상 시상식에선 TV연기상과 제10회 방영윤리위원기억 시상식에선 TV드라마 부문 연기상을 수상했습니다. 이어 1977년 당신으로 1978년 제14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자상을, 같은해 행복을 팝니다로 1979년 제15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대상을 차지하며 정상의 자리에 올라네요. 1975년부터 2002년까지 CJ제일제당 전속 모델로 27년동안 활동한 이력은 전원일기 참석과 또한 그녀가 ‘국민 엄마’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게한데 일조했습니다. 당시 제일제당의 대표 브랜드였던 다시다 광고 속에선 외쳤던 “그래 이맛이야”는 지금도 회자되는 그녀의 대표 유행어입니다. 



1980년부터 2002년까지 무려 22년간 방영된 MBC 전원일기 속 어머니 역으로의 참석을 시초로 ‘한국의 어머니’, ‘국민엄마’라는 타이틀을 가지게 된 첫의 여배우가 되었습니다. 그녀가 이 작품에 참석하는 중에도 다양한 스펙트럼의 연기를 많이 선보였지만 그녀의 이미지가 ‘인자한 한국형 엄마’로 고정되는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드라마라고 할 수 있으니 그녀에겐 대표작임과 동시에 족쇄와 같은 드라마였습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1981년에는 영화로 진출하여 스크린 데뷔작인 김수용 감독의 만추로 1983년 제2회 마닐라국제영화제에선 여우주연상을 차지했습니다. 1988년 방영한 김수현 극본의 드라마 모래성에선은 남편의 외도를 용서하지 못하고 이혼을 선언하는 장년의 중산층 주부 '현주' 역으로 열연을 펼쳐 드라마가 신드롬에 가까운 관심을 얻었고, 공채 데뷔 첫로 방영사 연기대상[MBC]을 거머쥐었습니다. 1989년에는 겨울안개에선 남편의 외도로 인한 배신과 자궁암 판정으로 시한부가 되어 죽음을 기다리는 여인 '명애' 역으로 다시 한 번 찬사를 받으며 백상예술대상 TV 부문의 대상을 두 번째 수상합니다[모래성과 공동]. 이 시기를 김혜자의 연기이력에선 전성기로 볼 수 있으며 Youtube 등에선 찾아지는 편집영상으로도 그 엄청난 연기력을 조금이나마 확인할 수 있습니다.


1990년대에 들어 황인뢰 감독 연출, 김희애, 하희라와 공연한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에 참석해 여전히 건재함을 증명하고, 김수현의 극본으로 1991-1992년 방영된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에선은 가부장적인 남편 옆에선 기죽어 사는 그 시대의 엄마이자 아내 '순자' 역으로 참석하여 역대 최고에 시청률을 기록하고 드라마가 신드롬을 일으키며 또 한 번의 연기대상[MBC]을 수상하였습니다. 1993년에는 고현정, 고소영등과 같이 엄마의 바다[MBC]에 참석하여 관심을 이어갔고, 94년에는 KBS에선 제작한 24부작 대하드라마 '인간의 땅'에선 농장 주인으로 참석한 토니 커티스와 공연하기도 했습니다. 할리우드 스타가 한국의 드라마에 참석한 역사적인 사건이었지만 아쉽게도 이 드라마가 쫄딱 망하는 바람에 이 놀라운 섭외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고 게다가 IMDB의 토니 커티스 필모그래피에도 이 드라마 참석 사실이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1999년 MBC 드라마 장미와 콩나물에선 보수적인 남편 옆에선 고통받고, 네 아들들과 그 며느리와의 사이에선도 갈등을 빚는 아내이자 시어머니 '필녀' 역으로 안방극장에 눈물과 웃음을 동시에 안겨주며 20세기 마지막 연기대상[MBC]의 영예를 안았습니다. 특별히 마지막엔 남편과 그 입장이 바뀌어 통쾌하게 복수를 하는 모습은 같은 갈등을 겪는 당시 여성들에겐 사입니다 같은 한 장면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2000년대 초 방영사들이 자연스럽게 탤런트 전속제를 풀기 전까지는 쭉 MBC 드라마에만 참석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그녀 스스로 ''한 때는 '김혜자를 보려면 MBC를 틀어야만 합니다' 는 자부심이 있었기 때문에 방영사가 전속제를 푼 것이 조금은 섭섭했습니다."고 소회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2000년대 들어서는 MBC의 주말연속극 그대를 알고부터, SBS와 MBC에선 각각 방영한 특집극 홍소장의 가을이나 봄날의 미소 등에 참석하였고, 주연이 아니면 거의 참석하지 않는 그녀가 예외적으로 MBC 궁에 참석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렇듯 2000년대에는 8, 90년대와 같이 굵직한 작품 활동이 많지 않았으나, 오랜만에 김수현의 작품인 2008년 KBS 주말드라마 엄마가 뿔났습니다에 타이틀롤로 참석하여 주부의 가출에 관한 화두와 같이 다시 한 번 진가를 인정받으며 그 해 연기대상[KBS]을 수상하였습니다. 그리고 같은해 2009년에는 1999년에 최진실과 공연한 마요네즈 이후 10년 만에 봉준호 감독의 마더에 참석하여 살인 누명을 쓴 아들을 구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엄마 역으로 열연하여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선 11개의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였습니다. 특별히 2010년 LA 비관심 협기억의 여우주연상 수상은 아시아 배우로는 첫의 수상이었습니다. TV에선의 이미지가 영화에선도 고정되는 것이 염려되어 영화는 아주 과작으로 참석하는 그녀에겐, 4년간의 꾸준한 구애를 보낸 봉준호의 끈기와 열정은 남다른 것이었고, 긴 세월 [전원일기] 이미지에 갇혀 조금은 흐려진 넓은 스펙트럼의 연기력이 모성 클리셰를 어둡게 비튼 이 작품에선 또다시 보여지며 대표작을 경신했습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김혜자가 국민적 사랑을 받았던 시절의 영향력을 직접적으로 느껴보지 못했던 세대들에겐 [엄마가 뿔났습니다]와 [마더]는 당시 50년 가까운 경력과 60대 후반의 나이에도 주연의 자리에선 국민 배우로 대접받는 그녀의 힘을 증명한 중요한 작품이었습니다.



2011년에는 JTBC의 청담동 살아요의 '혜자' 역으로 그녀의 경력 첫 시트콤에 참석하여 초기 JTBC에선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었고, 2015년 KBS에선 방영한 김인영 작가의 착하지 않은 여자들로 오랜만에 공중파 나들이를 하였으며, 같은 해인 2016년엔 노희경 작가의 tvN 디어 마이 프렌즈에선 기억을 점차 잃어가는 노년의 '희자' 역을 맡아 많은 울림을 안겼답니다. 2016년 이후 잠시 작품 활동이 없습니다. 2019년 JTBC 눈이 부시게란 작품으로 복귀하였습니다. 당초 25살의 '혜자'가 시간을 잘못 돌려 70대 노인이 되었습니다는 설정으로 대부분의 시청자들에겐 일반적인 판타지 소재의 드라마로 예상되었으나, 드라마 후반부 25살의 혜자는 없고 70대의 혜자가 치매에 걸려 모든 일을 상상하고 있었습니다는 게 밝혀지며 시청자들에겐 많은 충격을 안겼다. 특별히 자신의 치매 증세를 인지하게 되는 10회의 후반부 과거 자신의 모습[한지민]과 마주보는 바닷가의 장면과 병실에 누워 읊조리는 대사, 그리고 마지막회 엔딩의 나레이션은 김혜자란 배우가 왜 대한민국이 가장 사랑하는 국민 배우인지 알 수 있게 해준 장면이었습니다.


연예인들이 방영국 카메라와 같이 해외 봉사를 가고 그 내용을 영상으로 담는 방식의 자원봉사의 선구자격 인물로 처음 아프리카를 방문했을 때 죽어가는 아이들 앞에선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몸을 떨며 울기만 하는 모습이 방영되면서 사회에 많은 충격을 주어 해외 긴급구호에 대한 인식을 재고시킨 장자신입니다. 월드비전의 사랑의 빵이 바로 이때 김혜자가 만들어 낸 기적같은 자선의 결과물. 이후 이십여년 간 자신의 긴급구호활동을 정리한 책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를 출간해 오랫동안 베스트셀러에 머무르기도 했습니다. 절친인 김수미의 이야기로는, 실제 성품도 알려진 이미지와 똑같다고 합니다. 쉬는 날에 쌀 가마니 등에 이고 고아원에 기부 활동을 하러 다녔다는 일화를 소개하며 놀라움을 자아내기도 하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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