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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본색의 주인공 주윤발은 홍콩의 영화배우이자 느와르를 상징하는 배우이며 영원한 따거로 불리웁니다. 

그에 나이는 벌써 65세이며 ㄷㄷ... 학력은 중학교 중퇴가 되시겠습니다...!

1980년대 홍콩 느와르 액션영화의 전성기를 가져온 아이콘격 배우로, 한국에선은 영웅본색으로 엄청난 관심을 얻게 되었는데 쌍권총 총격 액션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 우리나라 팬들 사이에선은 그 카리스마로 인해 '윤발이 형', '윤발 따거' 등으로 불리웁니다.

홍콩 라마 섬 태생. 조상의 고향은 중국 광둥성 카이핑[개평]이라고 합니다. 혈액형은 O형.



한자로는 周潤發[중국 간자체로는 周润发]. 외래어 표기법에 의한 북경어 발음표기는 저우룬파[Zhōu Rùnfā]. 사실 광동어 발음으론 짜우연팟[Zau Jeon Faat]에 가까우나 우리나라 기자들은 보통화 발음을 고집합니다. 그런데 이건 외래어 표기법에 따른 한국의 '공식' 규정이므로 어쩔 수 없습니다. 하여튼 주윤발의 경우 광동어 발음에선 따온 Chow Yun-Fat이라는 표기가 통용되는 편입니다.




TVB 연예인 훈련반 3기 출신으로 임영동, 오맹달, 임달화 등과 동기고, 두기봉이 한 기수 아래 후배입니다.

우리나라에선 신성호[성우] 전문 더빙하였고 일본에선 이소베 츠토무가 전문 더빙합니다.

주윤발은 어린 시절 무척 가난하게 자라 중학교를 중퇴하고 상점 직원과 우편배달부 등의 일을 하다가 친구의 권유로 1972년 연극배우로 처음 데뷔하게 되었습니다고 합니다. 이후 TVB 연예인 훈련반을 졸업하고, TVB의 민간전기 시리즈에 단역으로 참석하다, 1976년 광조 라는 드라마에선 첫 주인공을 맡게 됩니다. 첫의 영화 데뷔작은 1976년 작품 영화 투태인. 그러다 1980년 작품인 드라마 상해탄이 관심을 끌면서 스타가 되었고, 이후 1984년에는 등대여명으로 대만 금마장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합니다. 소오강호 드라마에선 영호충역을 한 것도 이 때입니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영웅본색을 위해 마크 역의 배우를 물색하던 오우삼 감독을 만나게 되는데, 오우삼 감독은 어느날 지역신문을 보다 소년소녀 가장들에겐 장학금을 전달한 주윤발의 기사를 읽게 되었고 그를 만나보기로 합니다. 그리고 오우삼은 주윤발과의 첫 대면에선 "따뜻한 마음씨와 현대에 잃어버린 의협과 기사도의 풍모가 느껴지는 사람입니다."라고 느껴 섭외하게 됬다고 합니다. 1986년 개봉한 영웅본색은 주윤발을 내수용 스타에선 단숨에 아시아의 톱스타로 발돋움시켜줬는데 사실 영웅본색에선 그는 정확히 말하면 주연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영화 스토리상의 진짜 주연은 장국영과 적룡.

허나 이 영화에선 주윤발은 의리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도 연연하지 않는 비장한 카리스마를 보여줘 홍콩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권에선 엄청난 관심을 얻게 됩니다. 



홍콩 느와르 풍의 도시적 유혈액션이 강조되는 이 영화에선 그는 이후 '마지막 보이스카웃', '매트릭스' 등 수많은 헐리웃 영화에선 패러디하게 되는 멋진 쌍권총 액션을 보여주었고, 한국에선 썬글라스와 바바리 코트의 느와르식 패션과 담배 대신 성냥개비를 씹는 특유의 모습을 크게 유행시켰습니다.




이후 영웅본색의 속편들을 비롯해서 수많은 느와르 영화와 도신 시리즈 등 도박영화, 멜로영화, 코메디 영화 등 여러 장르의 영화에 다작으로 참석하였는데, 느와르식의 고독한 킬러 Badass 분위기로 유명하지만 사실 그는 풍부한 표정과 유머러스한 입담을 가지고 있는 연기파 배우로 '대장부일기', '장단각지연', '공자다정' 같은 영화에선 코메디 역할도 굉장히 잘 소화해냅니다. 악역에도 도전하였는데, 1986년 작품 드라마 '충열전기 양가장'에선 자존심 때문에 송나라를 멸망시키려 하는 신선 여동빈 역을, 1987년 작품 영화 소생몽경혼[우리나라 개봉명은 몽경영웅]에선 처절할 정도로 찌질한 부패경찰 역을 연기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미국으로 먼저 진출한 절친 오우삼 감독의 부름으로 1998년 리플레이먼스 킬러란 액션 느와르 영화에 참석해 헐리우드에 첫삽을 내딛게 되는데, 영어회화 능력의 부족으로 홍콩 영화에선의 유머러스한 입담을 살리지 못하고 과묵한 킬러 모습으로 출현해 이전보다 연기폭이 줄어든 평면적인 케릭터가 되어 버렸네요. 그후 1999년 애나 앤드 킹, 커럽터에 참석했지만 많은 힛트는 못쳤고, 그나마 2000년 개봉한 와호장룡이 북미권에선 대힛트해 인지도는 넓혔지만, 이후 찍은 방탄승은 그다지 흥행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후부턴 캐리비안의 해적, 드래곤볼 에볼루션 등의 영화에선 조연을 주로 맡으며 헐리웃 영화 속에선 역할 비중이 확 줄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헐리우드를 떠나 홍콩에 완전히 복귀하지 않고 꽤 오래동안 왔다갔습니다 해 의구심을 자아내기도 하였는데, 당시 다작참석에 질린 거 아니냐는 생각도 있었고 중국 정부와 사상면에선 대립해서 그런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평소 주윤발이 중국의 공산당 일당독재에 반대하는 듯한 뉘앙스의 발언을 가끔 하기도 했습니다고 합니다.





이후 오우삼의 중국 복귀 영화 적벽대전에선 주유 조상님역을 제안받았으나 하차했습니다. 적벽대전에선 하차한 이유는 명확하지 않은데, 유력한 설은 개런티 문제와 먼저 설명한 정치적인 문제, 또는 대본문제나 긴 촬영기간 때문이었습니다는 말도 있었습니다. 실제로 적벽대전은 촬영 직전까지도 대본이 완성되지 않았습니다고 하며, 예상 촬영기간도 무려 6개월이어서 대본과 긴 촬영기간 때문에 하차한 것이 결정적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양조위도 대본과 촬영기간을 이유로 하차를 선언한 적이 있었고, 이후 다시 복귀했지만 양조위는 결국 2008년 적벽대전 한 작품에만 매달려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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